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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리뷰/해석: 모두가 평등한 오징어 게임?

본 글에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민 대중이란 작은 거짓말보다는 더 큰 거짓말에 속는다

– 프레드리히 괴벨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큰 화제입니다.

2021년 9월 17일 개봉된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대한민국 최초로 넷플릭스 월드 랭킹 1위에 올랐습니다. <마이파더>, <도가니>, <남한산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이정재, 박해수, 오영수, 김주령 등 연기파 배우들이 다수 출연합니다. 제작비는 약 200억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단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큰 빚을 지고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총 456억 원 상금의 게임에 참가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은 빚쟁이에 도박 중독자인 이른바 ‘사회 낙오자’입니다. 딸의 생일선물 하나 사줄돈도 없으면서, 사람은 좋아 밉지 않은 전형적인 ‘못난 주인공’ 캐릭터입니다. 기훈은 어느날 지하철에서 의문의 남성을 만나 딱지치기를 하게되고, 의문의 남성은 기훈에게 ‘오징어 게임’에 참가할 것을 권유합니다. 돈이 절실한 기훈은 고민끝에 게임에 참가합니다.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외딴 무인도에 마련된 한 거대 게임장에서 게임을 진행합니다. 오징어 게임에는 기훈을 포함해 456명의 사람들이 참가합니다. 우승 상금은 456억, 탈락자들은 사살되어 화장됩니다. 이 게임에서 기훈은 마지막으로 참가하여 456번을 부여받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공평한가?


오징어 게임의 주최측이 제일 강조하는 핵심 가치는 바로 공평과 평등입니다. 5화에서 프론트맨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난 너희들이 시체에서 장기를 떼어내서 팔든, 장기를 통째로 씹어먹든, 난 관심이 없어. 하지만 너희들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망쳐놨어.

평등이야. 참가자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오징어 게임의 주최측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참가자들은 불공평한 사회에서 낙오되었다. 오징어 게임은 사회와는 다르다. 오징어 게임은 참가자들에게 갱생할 기회를 모든 참가자들에게 공평하게 제공한다.”

그러나 이는 뻔뻔한 거짓말입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이 모순을 통해 불공평한 우리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면 왜 오징어 게임이 그토록 불공평한 게임인지 1번 참가자 오일남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쌍문동에 기훈을 만나러 온 일남. <출처: 넷플릭스 영상 캡처>

오일남은 오징어 게임의 1번 참가자임과 동시에 주최자(호스트)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오직 일남의 즐거움만을 위해 설계되고 진행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그의 어린시절 추억 그 자체이자 즐거움입니다. 오직 오일남만이 이 게임의 모든 진행방식과 규칙을 알고있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 게임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일남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오징어 게임>에서 말하는 우리 사회의 불공평함입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들은 애초에 자신들이 설계한 규칙 안에서 공평함을 강조합니다. 게임은 오직 일반 참가자들 사이에서만 공평합니다. 게임 규칙의 설계자가 이 게임에 참가하는 순간 이 게임은 공평할 수 없습니다.

첫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갑작스러운 총격에 패닉에 빠집니다. 이때 오직 오일남만이 즐겁게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여기서 관객들은 코믹함을 느끼게 됩니다. “아 저 할아버지가 뇌종양 때문에 상황인식이 잘 안되는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일남이 오징어 게임의 주최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장면은 코믹한 장면에서 소름끼치는 장면으로 인식됩니다.

오일남은 게임의 진행방식과 벌칙(사람이 죽을 것도)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봇은 오일남의 움직임은 잡지 않습니다. 따라서 일남은 죽음의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때의 배경음악 <Fly to The Moon> 이 순간이 날아갈 것처럼 너무나 즐거운 오일남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오일남의 표정은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는 다른 참가자들의 그것과는 너무도 대조됩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즐기는 오일남의 모습. 다른 참가자들의 괴로운 표정과 매우 대조된다. <출처: 넷플릭스 영상 캡처>

다른 모든 게임도 오직 일남을 위해 계획되었습니다. 게임 중단을 결정하는 투표를 살펴보겠습니다. 보통의 투표라면 1번부터 익명 투표 후 결과를 한 번에 공개합니다. 그러나 이 투표는 456번부터 역순으로 진행되고, 투표 방식 또한 모두가 보는 앞에서 O혹은 X를 누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투표 방식에는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첫째는 참가자 개인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O와 X표 간 격차가 나지 않도록 합니다. 큰 결정을 책임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표하게 되면 책임을 회피하고자 한쪽에 투표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를 통해 결국 마지막 투표자 오일남이 이 투표의 결과를 좌우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일남은 게임을 끝내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철저히 계획적인 행동으로, 그는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 투표를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입니다. 마치 그가 “분명 나는 게임을 끝내고자 했는데,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게임에 참가했다. 인간은 이렇게 욕심많고 이기적인 존재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줄다리기에서도 이러한 불공평을 볼 수 있습니다. 오일남은 여자와 외국인이 많은 팀에서도 자신의 줄다리기 비법으로 승부를 막상막하로 끌고갑니다. 혹자는 오일남이 줄다리기 게임에서 사망할 리스크를 감수했다고 하지만, 저는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아 일남은 이 게임에서 질 경우에도 빠져나올 대책을 마련해 놓았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어둠 속에서 서로 죽이던 밤은 일남의 사이코패스적 이기심을 더욱 도드라지게 합니다. 일남은 몰래 안전한 장소로 피신 후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것을 관전합니다. 마지막 일남의 외침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나 너무 무서워!”도 관객들에게는 마치 “이러다 우리 모두 죽으니 싸우지 마시오!” 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일남의 진짜 의도는 “그만 중단해! 이러다 내 장난감들이 다 죽어버려서 게임을 못한단 말이야!”입니다. 드라마를 두 번 봐야지만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러다가는 다 죽어! 나 너무 무서워!” 라고 외치는 일남. <출처: 넷플릭스 영상 캡처>

오일남은 구슬치기에도 사실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예전에 살던 동네를 재현해놓은 게임장 안에서 추억에 빠져 즐거워합니다. 노을지는 골목길의 예쁜 세트장에서 일남은 자신의 옛 집을 찾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반면 기훈을 포함한 다른 모든 참가자들은 이 예쁜 경기장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입니다. 총소리가 울리고 사람이 죽는 와중에도 일남은 자신의 추억과 낭만에 빠져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 기득권들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런 일남에게 기훈은 아주 의외의 존재입니다. 구슬치기게임 직전 기훈의 행동에 일남의 계획이 흐트러집니다. 원래 일남은 노인이므로 선택받지 못해 깍두기가 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기훈의 선의에 깍두기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일남에게 성기훈은 매우 흥미로운 인물인 동시에 가장 타락시키고 싶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일남은 치매를 가장해 기훈이 자신을 속이도록 유도하고, 결국 기훈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잠시나마 확인합니다. 그리고는 게임 패배 후 죽음을 위장해 게임을 빠져나와 VIP 들을 맞이하러 갑니다.

오징어 게임의 주최자 일남은 참가자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일남과 VIP들이 즐거움을 느끼도록 설계되고 진행됩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인생 역전을 위해 목숨을 거는 상금이, 일남에게는 그저 발렛파킹 요금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토록 평등을 강조했던 ‘오징어 게임’은 오직 일남을 제외한 참가자들에게만 공평합니다. 게임에 참가한 일남의 리스크는 다른 455명의 참가자들의 목숨 리스크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입니다. 일남의 참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던 프론트맨이 “모두가 평등하다”라고 말한 것은 완벽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여기서 비참한 것은, 참가자들 누구도 주최측과 맞설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참가자들은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그들끼리 죽이고 배신합니다. 이는 영화 <기생충>의 메시지와도 매우 유사합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기득권의 모습은 <기생충>의 그것에 악랄함을 더했습니다. <기생충>에서의 상류층이 영악하나 다소 허점많은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오징어 게임>에서의 상류층은 악마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들은 참가자들을 그저 경마장의 말처럼 생각합니다. 말이 죽던 다치던 상관할바 아닙니다. 말은 기수와 경마장이 관리하고, 그들은 그저 게임을 관전하고 돈을 챙겨가면 그만입니다.

오징어 게임을 관전중인 VIP들 <출처: 넷플릭스 영상 캡처>

연출과 서사


드라마의 연출과 기획도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비극적이고 잔인한 스토리가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색의 세트를 통해 표현됩니다. 분홍색과 노란색 등의 화려한 색들은 피의 붉은색과 어울려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이러니한 영상들이 마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잔인한 장면들에서 재즈풍의 밝은 음악들이 사용됩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러한 음악은 잔인함을 극대화 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법들은 과거 많이 사용 되었기에 특별히 새롭지는 않습니다.

각 캐릭터는 매우 개성있고 입체적으로 그려졌습니다. 먼저 각자가 오징어 게임에 참가해야 하는 명분이 확실합니다. 주인공 기훈은 사채를 갚고 딸에게 당당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증권가에서 일하는 성우는 실패한 선물거래로 인한 큰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탈북녀 새벽은 어머니를 북에서 데려오고 가족이 함께 살기 위해, 건달 덕수는 도박빚을 갚기 위해 등등 인물마다 다양한 사연들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각 인물들의 뚜렷한 개성으로 비롯된 갈등은 이 드라마를 한층 더 입체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무대 뒤 병정들의 갈등과 인간적 모습들을 보여준 것도 <오징어 게임> 만이 갖는 다른 비슷한 작품들과의 차별성입니다. 예를 들어 <라이어 게임>에서의 주최측 직원들은 그저 가면 속 인물들에 그쳤습니다. 반면 <오징어 게임>에서는 주최측 병정들의 기숙사 생활이나 게임을 준비하는 장면 등을 경찰 준호의 눈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또한 병정들이 돈을 위해 참가자 의사와 짜고 장기 밀매를 일삼는 모습들은 가면 속 인간의 추악한 면모들을 잘 나타냅니다.

아쉬운 점들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첫째로는 게임 철학의 부재입니다. <라이어 게임>과 <카이지> 와 같은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게임들은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정교하게 설계된 게임들에는 두 가지 역할이 있는데, 첫째는 정치 체제를 모델링하여 인간 사회의 추악한 모습을 게임 속에서 나타나게 합니다. 또한 게임의 필승법이 숨어있도록 합니다. 얼핏 보기에 단순한 게임에서도 주인공들은 막판에 숨겨진 필승법을 찾아내 승리하여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합니다.

반면 <오징어 게임>의 게임들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숨겨진 필승법도 없으며, 질 것 같던 주인공의 대역전도 없습니다. 다만 숨겨진 오일남의 즐거움과 게임 속 인간의 추악한 갈등이 강조됩니다. 이는 기존에 <라이어 게임>, <카이지>와 같은 비슷한 작품을 접했던 사람들에게는 호불호의 영역일 수 있겠습니다.

둘째는 한국영화/드라마에서 자주 지적되는 신파입니다. 감동적인 장면들마다 배경음악이 깔리며 대사가 많아지고 전개가 느려집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연출 없이 무덤덤한 연출이 더 슬픔을 부각시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만, 부산행의 경우와 같이 해외 관객들에게는 이러한 연출이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무리


이 드라마에는  많은 복선과 상징들이 숨어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이후 시즌들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포인트에 주목해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프론트맨의 목적입니다. 드라마에서 밝혀진바와 같이 프론트맨 황인호는 경찰대학교 출신의 형사로서 2015년 오징어 게임 우승자입니다. 이런 그가 프론트맨으로서 근무하는 것이 수상합니다. 어쩌면 이후 시즌에서 프론트맨이 오징어 게임 주최측에 복수하는 모습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훈의 타락입니다. 두 가지 미심쩍은 복선이 있습니다. 첫째는 일남과 기훈이 깐부가 된 것이고, 둘째는 깐부가 된 후 일남이 기훈에게 001번 외투를 입혀주는 것입니다. 시즌 2와 시즌 3에서 어쩌면 기훈이 일남과 같이 타락해 새로운 오징어 게임의 호스트가 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기훈과 깐부를 맺자는 일남. <출처: 넷플릭스 영상 캡처>

간만에 쉬지않고 몰입해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나와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는 것도 참 신기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또한 이 드라마의 이야기에는 복선과 잠재력이 많아 이후 시즌들에서 재미있고 다양하게 뻗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후 전개도 참으로 궁금하고 기대되는 드라마입니다.

정리하면 <오징어 게임> 시즌 1에서는 기득권의 거짓말과 기만을 통해 인간 사회를 풍자했습니다. 시즌 2에서는 어떤 스토리로 또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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