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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ct of Killing (액트 오브 킬링) 리뷰: 악은 정말로 평범한가

1981년 스탠포드 대학의 한 작은 지하실에서 심리학 실험이 수행되었다. 실험에 참가한 평범한 중산층의 대학생들은 12명의 교도관과 12명의 죄수 그룹으로 나뉘어 역할극을 수행했다.

놀랍게도, 대학생들은 실제 교도관과 죄수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죄수 역을 맡은 학생들은 명령에 불복종하기 시작했으며, 교도관 역의 학생들은 엄격하고 권위적으로 행동했다. 갈등은 증폭되어 교도관들은 죄수들을 학대하였고, 실험은 결국 중단되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으로 유명한 위 실험은, 평범한 인간도 사회적 지지와 환경에 의해 자신의 역할에 몰입함으로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교훈을 내포했다. 이와 유사한 실험이 BBC에서 2002년에 재현되고 비슷한 결론을 도출하며 위 사실을 뒷받침했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은 끔찍한 범죄를 자행한 이들조차 평범한 사람일 수 있으며, 환경과 강압의 결과물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쓰여왔다1.

Act of Killing

2012년 개봉된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 학살을 통해 악의 민낯과 그 특수성을 다룬다. 인도네시아 학살은 1965년부터 약 1년간 쿠데타군이 반공을 명분으로 공산주의자, 중국인 등 50만명 이상을 학살한 20세기 최악의 학살 사건 중 하나이다.

<출처: Daum 영화>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영화 속 전기영화의 제작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작진들은 인도네시아 학살을 이끌고 자행한 실제인물인 안와르 콩고와 그 친구들을 섭외한다. 제작진은 이들의 행적을 찬양하는 전기영화 촬영을 제안하고 (실제로는 고발 영화를 제작한다),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의 잔인한 살인행적들을 자랑스럽게 재연한다. 안와르 콩고와 일당들은 철사줄을 이용한 교살, 칼을 사용한 참수, 그 외의 여러 고문 등을 아주 당당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재연한다.

제작진에게 철사를 이용한 살인장면을 재연중인 주인공 안와르 콩고 <사진 출처: Daum 영화>

이 영화는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매우 비슷한 기법으로 안와르 콩고 일당의 악행을 스크린에 담는다. 두 영화 모두 스크린속 배우들의 범죄장면들을 역겨울 정도로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는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지 않고 영화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게 만드는데, 관객들은 아주 냉담한 시선으로 배우들의 범죄장면을 바라보게 된다. 배우들이 신나고 즐거울수록, 관객들은 도리어 거부감을 느낀다. 관객들로 하여금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들의 악행을 바라보게 하는 영화적 장치이다.

주인공 안와르 콩고는 실제 학살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다. 영화 내내 안와르 콩고는 정말로 ‘잘’ 산다.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인 장본인은 아주 패션에 신경을 쓰는 멋쟁이인데다가, 주지사를 제자로 두었으며, 손자들과 함께 토끼 먹이를 주고, 할리웃 영화를 아주 즐겨 본다. 간혹 본인이 죽인 사람들이 꿈에 나와 괴롭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가 한 일들에 비해 그렇게 심각할 정도는 아니다.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던 안와르 콩고와 친구들은 별탈없이 잘 산다 <출처: Daum 영화>

연기를 거듭할수록, 피해자 역을 맡은 안와르 콩고의 심정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마치 피해자들의 마음이 느껴지기라도 하는 양 표정이 점차 어두워진다. 매 씬을 찍을 때나 모니터링 때에도 깊은 생각에 잠긴다. 마음속에 죄책감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영화의 흐름상 안와르 콩고가 참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마음들이 썩 좋지 않다 <출처: Daum 영화>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진행되며 아마추어 연기자들 2 이 점점 상황에 몰입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작진은 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불을 지르는 장면을 위해 해당 마을의 주민들을 섭외한다. 그 모든 장면들이 연기임에도 불구하고, 안와르 콩고 일당은 마치 실제인듯 사람들을 위협하고 겁박한다. 심지어 섭외된 마을 사람들조차 실제 마을이 침략당하는 것처럼 괴로워한다. 몇몇 여성들은 실신하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은 컷 사인이 떨어져도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안와르 콩고와 친구들도 역할에 점점 더 몰입한다. 그들의 연기는 계속해서 발전한다. 영화 초반 안와르 콩고 일당의 연기는 참으로 형편없는데, 영화의 중반을 거쳐 점점 나아지는가 싶더니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전문배우가 아닐까 하는 정도로 수준급의 연기를 보여준다. 그들은 점점 더 역할에 몰입하고 몰입해, 결국에는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자신들의 범죄를 재연한다.

마치 스탠포드 감옥 실험의 피험자들처럼, 모든이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몰입하고 현실과 혼동하기 힘들 지경에 이른다. 이 시점에서 마치 영화가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치 영화 속 역할을 연기하듯이, 그들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인가?” “안와르 콩고가 결국 뉘우치게 되는가?” 등의 질문들과 함께, 마치 흔한 할리웃 영화처럼 악당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들도 사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며, 그들이 뉘우칠 수 있다는 해피엔딩으로 우리를 끌고갈듯하다.

영화 말미 고문장면에서의 안와르 콩고와 친구의 표정연기. 아마추어 연기자의 그것이 아니다. <출처: Daum영화>

그러나 영화는 결코 그들에게 면죄부를 허락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은 안와르 콩고가 아주 많은 사람을 죽였던 어느 한 옥상에서 시작된다. 전기영화가 완성됬음에도 안와르 콩고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한밤중에 옥상으로 올라가 제작진에게 자신의 마음을 토로한다.

나쁜일이라는건 알았지만, 나는 그들을 죽여야만 했어요.

그리고는 아주 큰 죄책감을 느낀듯, 이 세상 사람의 소리라고 볼 수 없는 아주 기이한 구토를 오랫동안 뱉어낸다. 그리고는 축 늘어져 힘없이 계단을 내려간다.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점은, 참회의 모습을 보이는 안와르 콩고에게 어떠한 연민과 동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안와르 콩고의 “자신에게 돌아올 죗값이 두려워서”, “자신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라는 사이코패스적 변명 때문일수도, 그들이 저지른 행위의 잔혹함 때문일수도 있다. 수많은 장면들의 잔혹함과 그들의 뻔뻔함이 섞여있는 이 영화의 종반부에서, 안와르 콩고가 흘리는 진짜 눈물에도 관객들은 조금도 동요할수가 없다. 영화 내내 안와르 콩고와 그 일당들에게 스탠포드 감옥실험의 면죄부를 줄 것 같았던 이 영화가, 그들의 눈물과 참회에 냉소를 가함으로써 이 범죄자들에게 선고를 내리는 순간을 목격한다.

2018년 현재, 위에서 소개한 스탠포드 감옥 실험의 결과가 조작된 것이라는 기사와 반론들이 등장했다3. 작가 벤 블럼이 실험 관련자와 참가자들을 비공개로 인터뷰한 결과, 실험을 주관한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교도관들에게 더욱 가혹해질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또한 죄수 역의 참가자들은 그들이 죄수 역할에 몰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험을 중단하겠다는 요구가 거절당해 좌절감을 느낀 것이라고 인터뷰했다. 결국 인간이 환경과 상황에 의해 범죄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가설은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주변의 여러 예시들을 통해, 환경과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악에 저항하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범죄자의 환경과 시대를 참작한다고 해도, 행위의 결과를 결코 돌이킬수는 없다.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의 양심에 일침을 가함과 동시에, 이를 보는 관객들이 최소한의 연민도 느낄 수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희생자들의 복수를 작게나마 대신한다.

안와르 콩고는 영화 말미에서야 늦게나마 용서를 구했지만, 피해자 역할을 몇 개월에 걸쳐 연기한 후에서야 피해자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끔찍한 괴물이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 안와르 콩고가 이런 사이코패스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신은 이들조차 용서할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도 있지 않겠는가.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실제 범죄자들에게 자신의 행위를 재연하게 함으로써 악의 민낯과 역겨움을 관객에게 덤덤하면서도 생생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마치 연출된듯한 실제상황이 더욱 아프고 쓰라리다.

  1. KISTI 과학향기: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진실
  2. 다들 현지에서 섭외된 아주 아마추어 연기자들이다.
  3. ‘마시멜로와 감옥실험’ 스탠퍼드 심리학 실험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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