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아웃 2 심층 리뷰/해석: 사춘기 마음을 영화로 표현하자면
이 글은 강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역시 창의력의 픽사다!“
또 한 번 디즈니·픽사의 창의력에 감탄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8년 만의 속편 <인사이드 아웃 2>는 사춘기 마음을 인사이드 아웃적으로 너무나 재치 있게 표현했습니다. 영화 매체만의 장점을 잘 활용해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그려냈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를 심층적으로 리뷰해보겠습니다. 특히 다음 두 가지 포인트에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첫째, 이 영화가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사춘기의 복잡한 감정을 얼마나 영화적으로 표현해 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이 영화가 주요 주제인 ‘불안의 다양한 측면’과 ‘자아 통합’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Stay tuned!
영화 소개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제작하고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가 배급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피트 닥터 대신 켈시 만이 감독을 맡았습니다. 2024년 6월 14일 개봉한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 가족, 코미디, 드라마 장르를 아우르며, 러닝타임은 약 1시간 36분입니다.
주요 목소리 출연진으로는 조이 역의 에이미 폴러와 함께, 새로운 감정인 불안 역에 마야 호크가 캐스팅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켄싱턴 톨먼이 라일리 앤더슨 역을 맡았으며, 필리스 스미스, 루이스 블랙, 토니 헤일, 리자 라피라 등이 다시 한번 감정들의 목소리를 연기합니다 .
전작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11살 소녀 라일리가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반면, 이번 속편 <인사이드 아웃 2>는 만 13살이 된 라일리가 사춘기에 겪는 혼란과 성장 이야기를 다룹니다. 불안, 부럽, 당황, 따분, 향수 다섯 새로운 감정이 추가됩니다. 기존의 감정과 새로운 감정들의 갈등과 봉합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사춘기 라일리의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인사이드 아웃>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낸 복잡한 사춘기 마음
사춘기 감정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사이드 아웃 2>는 <인사이드 아웃>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춘기 마음을 정말 잘 표현해 냈습니다.
비유가 정말 재미있습니다. 라일리는 전작에서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확장되고 안정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마음들은 사춘기에 들어서며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마음을 ‘마음 본부의 확장 공사’로 표현합니다. 인부들이 들이닥쳐 철거 공사를 진행하는 장면이, 사춘기 혼란의 느낌을 관객들에게 참 잘 전달합니다.
성장으로 인해 더 복잡해진 라일리의 마음과 더 불안은 새로운 감정들의 등장으로 표현됩니다. 마음 본부 확장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 불안이와 함께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합니다. 특별히 붉은색의 큰 눈동자를 가진 불안이의 모습은 긴장감을 조성하며 앞으로 있을 감정 캐릭터 간의 갈등을 암시합니다.
불안이 캐릭터 디자인이 참 절묘합니다. 붉은색 피부, 큰 눈과 작은 동공은 악한 느낌을 풍깁니다. 그런데 또 목소리와 웃는 입은 어수룩하고 착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치아가 불균형한 큰 입과 삐죽 솟은 머리칼에서 불안함이 느껴집니다. 복잡하고 여러 특징을 가진 불안의 감정을 캐릭터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가 새 캐릭터를 통해 라일리 내면의 변화를 표현했다면, 라일리의 주변 환경의 변화는 ‘하키 캠프’를 통해 표현됩니다. 라일리는 베프들과 함께 전국 최고 하키 유망주들이 3일간 모이는 하키 캠프에 초대되는데, 여기에서 활약하면 전국 최고 하키 팀인 ‘파이어호크’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라일리의 인간관계는 더 복잡하고 어려워집니다. 캠프로 가는 버스에서 라일리는 베프 둘이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라일리 머릿속 감정들의 대사를 통해 사춘기 라일리가 친구들과의 관계에 얼마나 민감한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혼란속에서 라일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자신의 우상인 밸과 새로운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를 불안이가 라일리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자기감’(한국어 자막에서는 ‘자아’로 번역했지만, 원어는 sense of self로서 자기감으로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을 기억의 저편으로 던져버리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인간관계로 인해 생긴 불안으로 인해 라일리가 기존 자기 인식과 신념(나는 좋은 사람이야, 나는 좋은 친구야 등)을 일시적으로 억압하는 모습을 <인사이드 아웃>답게 표현했습니다.
‘하키 캠프’라는 무대 장치는 라일리가 극복해야 할 사춘기 과제를 참 잘 표현합니다. 실제로 정신분석적 발달이론에1 따르면 라일리 나이의 청소년이 극복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자기 내부의 심리적 변화와 중요한 성인 과제에 직면한 청소년은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또한 이전에 터득한 기술과 역할을 청소년기의 직업 모델에 연결시키는 과제에도 관심을 갖는다” 2.
‘파이어호크’ 입단 테스트이기도 한 이 하키 캠프는 라일리가 좋아하는 ‘하키’를 직업으로 연결해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이 캠프에서 겪게되는 여러 관계들은 라일리가 다른 사람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빌런아닌 빌런 ‘불안이’를 통해 보는 다양한 불안의 모습
이번작의 주요 인물인 ‘불안이’는 참 입체적이고 복잡한 캐릭터입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의 복잡함 만큼이나 이 영화속에서 ‘불안이’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불안의 여러 측면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라일리가 어려운 과제들에 직면하면서 자연스럽게 불안이가 마음 본부의 제어를 주도하게 됩니다. 낯선 캠프 환경, 하키 선수로서의 성공, 친한 친구들과의 관계,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등 라일리를 둘러싼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은 라일리를 더 불안하게 만듭니다. 영화는 라일리의 커지는 불안을 ‘불안이가 콘솔의 주도권을 더 많이 잡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불안이가 감정을 주도할수록 역설적으로 마음 본부는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가 불안한 마음에 열심히 강박적으로 무엇을 한다고 꼭 잘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안이는 기존 감정들을 유리병에 가둬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데, 실제로 매우 불안한 사람의 다른 감정들이 마비되는 것을 <인사이드 아웃>답게 표현했습니다.
불안에 대한 이 영화의 백미는 배게성 잠입 씬입니다. “불안에 대해 어떻게 이 한 장면으로 이렇게 표현을 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잘 살렸습니다.
영화 중간 기쁨이와 감정들은 베개성으로 잠입하게 됩니다. 베개성은 마치 빌런 불안이의 지휘 통제실 같은 모습으로 연출됩니다. 독재자같은 불안이는 큰 화면을 통해 직원들에게 “라일리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나쁜 상황들을 시뮬레이션”할 것을 명령하고 지휘합니다. 기쁨이가 “연필 내려놓고 나쁜 상상도 그만하라”고 외치자 그제서야 직원들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신나게 배게싸움을 시작합니다.
이 장면에 담긴 첫번째 메시지는 불안의 필요성입니다. 이 장면의 화면 구성을 보면 마치 악당이 음모를 꾸미는 것 같습니다. 크고 붉은 스크린과 중앙에서 직원들을 통제하는 불안이의 모습은 영락없는 악당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라일리를 위한 착한 일입니다. 관객의 인식도 따라서 이동합니다. 빌런처럼 보였던 불안이가 다시 보이는 순간입니다. 영화는 “부정적으로만 보이던 불안도 사실은 우리를 돕고자 하는 감정”이라는 메시지를 “아주 영화적인” 방식으로 전달합니다.
둘째는 지나친 불안의 단점입니다. 원래 베개성의 직원들이 하는일은 베개 싸움입니다. 그런데 불안이가 득세하고는 직원들이 하기 싫은 일만 억지로 하고 있습니다. 불안 때문에 라일리는 잠도 들지 못합니다. 기쁨이 개입하고서야 베개성 직원들은 원래 하던 일을 할 수 있고, 라일리는 잠들 수 있습니다. 불안과 다른 감정의 조화를 강조하는 이 장면은 영화 전체 주제의 작은 복선이기도 합니다.
‘좋은 나’에서 ‘복잡한 나’로: 감정의 통합과 성장
라일리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될수록, 불안이는 더 열심히 일합니다. 마음 본부를 더 열심히 통제하며 라일리를 더 몰아붙입니다. 긍정적인 자기감을 던져버리고 “난 부족해”, “내가 하키만 잘하면 친구들이 생길거야”, “내가 파이어호크만 들어가면 혼자가 아닐거야”라고 외치는 새로운 자기감을 만들어 냅니다.
기존의 자기감과 불안이가 만들어낸 새로운 자기감은 매우 상반됩니다. 기존의 자기감은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고 친절한 이미지를 그리는 반면, 새로운 자기감은 자신의 부족함과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상반된 감정을 다음과 같이 시각과 청각으로 표현합니다. 상반된 자기감은 푸른색과 붉은색의 대조로, 라일리가 각 자기감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은 자기감들이 계속해서 내뱉는 대사로써 표현합니다.
불안이 자신도 잘해보려고 열심히 하는데, 좋아지지 않는 상황이 답답합니다. 그러한 마음은 불안이와 콘솔을 둘러싼 ‘불안 폭풍’으로 표현됩니다. 폭풍은 계속해서 거세지고, 라일리는 선발이 걸린 하키 시합에서 2분간 퇴장을 당합니다. 긴장은 극으로 치닫고 결국 한계에 다다른 불안이는 눈물을 터뜨립니다. 기쁨이는 그런 불안이를 설득해 함께 탈출합니다.
이때 기쁨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억압하고 날려버린 나쁜 기억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상반된 두 자기감이 통합된 새로운 자기감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이 영화에서 가장 탁월한 지점으로 꼽습니다. 상반된 자기감으로 인한 혼란과 통합을 이 영화는 3D 그래픽으로 정말 멋지게 표현합니다. 새롭게 통합된 자기감은 푸른빛과 붉은빛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자기감이 내뱉는 말들을 통해 관객은 라일리의 내면이 자신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감의 통합과 내면의 성장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생각을 했을까?” 하며 감탄했습니다.
통합된 새로운 자기감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3:
“나는 이기적이야” “나는 친절해” “나는 부족해” “나는 좋은사람이야”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그런데 나 자신이고 싶어” “나는 용감해, 한편으로는 무서워” “성공이 전부야” “나는 실수해” “나는 짖궃어” “나는 좋은 친구야” “나는 최악의 친구야” “나는 강해” “나는 때때로 도움이 필요해”
새롭게 형성된 자기감은 양심을 수반합니다. 이에 라일리는 자신이 했던 잘못을 친구들에게 고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마음 콘솔을 제어하는 기쁨이와 진정으로 하키를 즐기며 플레이하는 라일리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사춘기의 과제를 잘 극복해낸 청소년이 느낄 수 있는 진정한 기쁨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영화의 열린 결말도 라일리의 성장한 마음을 잘 표현합니다. 영화는 합격 결과를 알 수 없는 라일리의 묘한 웃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재밌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 관객은 라일리가 설령 불합격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삶은 때때로 불행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잘 자리잡은 자기감은 이러한 불행도 이겨나가게 할 수 있습니다.
기쁨과 불안의 조화
<인사이드 아웃 2>의 주제는 큰 틀에서 전편 <인사이드 아웃>과 같습니다. 우리 안의 모든 감정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며 나쁘거나 필요없는 감정은 없다는 것입니다. 1편에서 슬픔이가 그랬던 것처럼, 불안 또한 우리를 위한 감정이고, 다만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인사이드 아웃 2>는 성인들에게도 참 좋은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많은 성인들이 “나는 부족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마음속 불안이가 콘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쩌면 사춘기를 미쳐 지나지 못한어른들에게도 이 영화는 위로가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
한편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사춘기 발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성적 측면이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사춘기 발달에서 성적 변화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아마 제작진은 어린 관객들을 위해 성적 측면을 아주 제한적으로(라일리가 벨을 동경하는 마음 정도로) 다룬 것 같습니다.
영화의 서사가 매우 제한된 사건과 시간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실제 사춘기 성장 기간에 비해 3일의 아이스하키 캠프는 시간과 공간 측면에서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 8년만의 장편 후속작임에도 마치 단편과 같이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마도 100분짜리 영화에 사춘기를 압축해야 하는 절충안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론: <인사이드 아웃> 답게 표현한 사춘기 마음과 성장
<인사이드 아웃2>는 사춘기 라일리의 혼란과 성장을 정말로 <인사이드 아웃>답게 표현한 영화입니다. 시각적 요소와 의인화된 감정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춘기의 복잡한 마음을 복잡한 대사 없이 영화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믿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여담으로 픽사에서 <인사이드 아웃>의 확장성 높은 세계관을 통해 상처받고 소외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명하는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단란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속마음과 감정을 조명하고, 그들이 어떠한 경험과 과정을 통해 치유받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속편 혹은 단편이 나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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