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Knives Out (나이브스 아웃) 리뷰/해석: 마르타의 규칙
본 포스트에는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Knives Out (나이브스 아웃)은 2019년에 개봉한 라이언 존슨 감독의 미스터리/스릴러 영화입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수많은 설정 오류와 개연성 부족으로 많은 스타워즈 팬들에게 비판을 받은바 있습니다. 그런 라이언 존슨 감독이 초호화 출연진과 함께 제작한 나이브스 아웃은 큰 관심을 끌었고, 영화는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2020년 제 24회 미국 새틀라이트 시상식에서 ‘영화 앙상블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유명 평론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는 무려 97%의 신선도와 92%의 관객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초호화 캐스팅입니다. 마치 감독이 전작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작정하고 캐스팅한 것 같습니다. 최고의 제임스 본드 중 하나인 다니엘 크레이그, ‘할로윈’의 제이미 리 커티스, ‘캡틴 아메리카’와 ‘설국 열차’의 크리스 에반스,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돈 존슨, ‘유전’의 토니 콜레트, ‘It’의 제이든 마텔 등 현재 할리우드에서 제일 핫한 배우들이 총출동 합니다. 만약 라이언 존슨 감독이 이 배우들을 데리고 또 한 번 실패할 경우,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캐스팅입니다.
특별히 다니엘 크레이그의 출연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제임스 본드의 강한 이미지 때문에 그간 도전한 연기 변신이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2008년 개봉한 ‘어리석은 자의 과거 (Flashback of A Fool)’에서 좋은 연기를 펼쳤음에도,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벗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워낙 강력하게 새겨진 이미지 때문에 슈트만 입어도 제임스 본드처럼 보이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나이브즈 아웃에 다니엘 크레이그가 섭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과연 그가 이번에는 제임스 본드를 벗어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절반의 성공’만 거둔듯 합니다. 미국 남부식(켄터키 지방) 억양을 과장되게 구사하고, 한껏 고조된 하이톤의 연기를 보여줬음에도, 이상하게 제임스 본드가 잠시 탐정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한계점은 아마 본인의 배우 커리어에도 가장 큰 숙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고전적이고 무게감있게 연출되었습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트롬비 가족의 오래된 저택에서 펼쳐집니다. 어두운 저택을 간접조명으로 연출하여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극대화 시켰습니다. 할리 트롬비가 미스테리 작가라는 설정과 앤틱한 저택의 디자인은 마치 셜록 홈즈같은 느낌을 지어냅니다. 그러나 영화가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습니다. 익살스러운 유머를 간간히 섞어 넣었고, 전개가 빠르고 지루하지 않습니다. 뻔하게 진행될 것 같은 스토리가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것도 신선합니다. 이 영화는 살인 사건의 전말을 관객들에게 영화 초반부에 공개합니다. 마르타가 살인에 관여한 것을 알게된 관객은, 오히려 마르타의 범행이 탄로날까봐 조마조마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개는 선악 구도를 살짝 비틀어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느끼게 합니다.
Knives are out: used to refer to a situation when people are being unpleasant about someone, or trying to harm someone. Example: The knives are out for the former president.
– Cambridge Dictionary –
캠브리지 사전에 따르면 “Knives are out”은 “i) 사람들이 누군가에 대해 기쁘지 않은 상황 혹은 ii) 누군가를 해치려 하는 상황을 언급할때 사용 되는 단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i)은 ‘마르타에 대한 트롬비 가족의 차별과 비난’을 상징하고, ii)는 ‘마르타에 대한 랜섬의 음모’를 의미합니다.
Knives (칼들)는 영화 곳곳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됩니다. 집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식물은 ‘칼 도넛’ 장식입니다. 수많은 칼들이 원형을 이루며 원의 중심부를 향하고, 그 중심부는 텅 비어있습니다. 이 칼 도넛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영화 초반 트롬비 가족들을 한 명씩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보면, 각 인물 옆에 칼 도넛이 자리합니다.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인물보다는 칼 도넛에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분이 연기한 탐정 ‘르누아 블랑’은 칼들의 바깥(화면의 바깥)에서 제 3자로 이들을 지켜봅니다. 이는 영화의 전체 구도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보여집니다. 관객들은 영화 내내 마르타에게 향하는 트롬비 가족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르누아 블랑은 이를 한발 뒤에서 지켜봅니다.
칼 도넛은 또한 범인을 밝혀주는 상징적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영화 중간 르누아 블랑은 “이 사건은 마치 도넛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다.”라고 말합니다. 영화 말미에 르누아 블랑이 진실을 밝힐때 그의 머리는 칼 도넛의 정확히 중앙에 위치합니다. 이는 텅 빈 구멍이 채워졌다는 것을 은유합니다. 어쩌면 감독은 칼 도넛으로 진범의 복선을 심어놓았던 것 같습니다. 트롬비 가족 모두가 칼 도넛 옆에서 인터뷰하며 등장했지만, 랜섬만 유일하게 칼 도넛 옆에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또 할란 트롬비는 “나는 이 칼과 같다.” “랜섬은 참 나를 많이 닮은 놈이야.”라고 언급합니다. 영화에 계속해서 복선이 숨어있는 셈입니다.
트롬비 가족들은 마르타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듯 하지만 은근슬쩍 차별적 시선을 내비칩니다. 리차드는 사람 좋은척 마르타를 차별합니다. 마르타의 가족이 우루과이 이민자인 것을 언급합니다. 마르타의 가족들은 다른 남미 사람들과는 다르게 합법적으로 이민을 왔다고 이야기 하면서, 마치 자신은 차별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이 때 마르타의 등 뒤에 있는 벽난로 속 불이 이글이글 거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르타의 내면적 분노를 표현합니다. 트롬비 가족의 위선은 영화 중반에 더욱 낯낯이 드러납니다. 영화 중반에 마르타가 유산을 상속받게 되자 “속궁합이라도 맞춰봤니?” 라며 원색적 비난을 쏟아냅니다. 이후로도 트롬비 가족은 계속해서 유산을 빼앗기 위해 마르타를 비난하고 기만합니다. 이는 미국 백인 사회에 만연한 사상을 풍자합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정중한척 하지만 사실은 타 인종과 이민자에 대한 멸시가 밑바탕에 깔려있습니다.
Knives out의 또다른 의미는 ‘마르타에 대한 랜섬의 음모’입니다. 랜섬은 소시오패스적인 인물로, 마르타에게 누명을 씌우고 유산을 가로채려 음모를 꾸밉니다. 영화 초반에 할란 트롬비는 랜섬에 대해 “자신 만만하고, 멍청하고, 참견 싫어하고, 뒤는 생각도 안하고 인생을 게임처럼 살지.”라고 언급합니다. 이는 소시오패스의 특성에 가깝습니다. 우리의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가 이 미스테리 영화의 악당인 것은 흥미롭습니다. 랜섬은 대체로 밝은 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관객을 속이기 위한 감독의 장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랜섬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하자 수많은 칼 중 하나를 뽑아(out) 마르타를 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필 무대 소품용 가짜 칼을 뽑아 실패합니다. 영화 초반에 할란 트롬비가 “그렇게 살면 모르게 돼. 무대 소품과 진짜 칼의 차이를.” 라고 한 것을 미루어보아, 가짜 칼은 랜섬의 텅 빈 인생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마르타가 트롬비 가족의 차별과 랜섬의 음모를 이겨낸 힘은 ‘정직함과 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트롬비 가족과는 달리, 마르타는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진실되고 양심적으로 행동합니다. 영화 중간 마르타의 “저는 승리보다 아름답게 플레이하는 것을 중요시해요.” 라는 대사는 이러한 생각을 잘 나타냅니다. 마르타의 양심은 트롬비 가족들의 비난과 랜섬의 음모 모두를 이겨내게 합니다. 르누아 블랑도 “당신의 방식이 옳았어요.”라 이야기하며 마르타의 정직함을 칭찬합니다. 반면 랜섬에게는 “She didn’t play your games”라며 랜섬에게 패배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랜섬은 음모를 꾸며 유산을 가로채려 했지만, 마르타가 랜섬의 게임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의 양심을 따라 행동하며 랜섬의 계획은 실패합니다. 프랜이 쓰러져 있을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누명을 쓰고 쫓기고 있는 마르타는 도망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자신이 붙잡히더라도 프랜을 살리는 길을 선택합니다. 하버드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인 마사 스타우트는 본인의 저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소시오패스의 게임에 참여하지 마라.”라고 조언합니다. 이러한 소시오패스에게 휘둘리지 않는 방법 중 하나는, 그들의 게임에 휘말리지 않는 것입니다. 바보같지만 정직한 방법은 결국 승리한다는 교훈을 전달합니다.
이 영화는 가정부가 My House, My Rulse, My Coffee라 적힌 컵을 쟁반에 들고 할란 트롬비의 서재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반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르타가 같은 컵을 들고 트롬비 가족들을 내려다 보는 구도로 연출됩니다. 새 집주인이 된 마르타는 테라스에서 집 밖의 트롬비 가족들을 내려다 봅니다. 그러나 상속받은 유산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그들에게 나눠주기로 결심한 상태입니다. 마르타가 들고 있는 컵의 My House, My Rules, My Coffee는 마르타의 규칙을 의미합니다. 우루과이 이민자 가족 출신인 가정부 마르타는 영화 내내 연약하고 평범한 인물입니다. 특별히 재주가 있지도 않고, 미스테리를 직접 해결하지도 못합니다. 영악하고 계산적이지 못해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우유부단 합니다. 그러나 영화내내 그 누구보다 진실했으며, 누구보다 강하고 모든 것을 이겨낸 주인공입니다. 마르타의 Rule은 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