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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폭스캐처 리뷰: 컴플렉스가 컴플렉스를 만났을 때

본 포스트는 강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폭스캐처의 포스터 <출처: 다음영화>

존 듀폰 살인사건은 1996년 미국 화학 재벌 가문의 4대손 존 E.듀폰이 전 레슬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데이빗 슐츠를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영화 폭스캐처는 위 실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컴플렉스가 가져오는 비극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레슬러인 마크 슐츠와 재벌 4세 존 듀폰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마크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금메달리스트 임에도 국가의 대우는 형편없다. 낡은 집에서 사는 마크는 햄버거로 끼니를 떼우고, 초라한 강연장에서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연설하며 생활한다. 기댈곳은 매일 레슬링으로 몸을 부대끼는 형 데이빗 슐츠 뿐이다. 마크는 국가에게 헌신하지만 버림받은 운동선수이다.

이런 마크에게 어느날 존 듀폰이란 인물이 만남을 요청한다. 존은 미국 최고의 화학재벌인 듀폰 가의 4대손으로 억만장자이자 레슬링 코치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 미국 최고의 레슬링 팀을 만들 계획을 설명하며 마크에게 자신의 팀 폭스캐처에 합류할 것을 권유한다.

국가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마크에게 존은 새 아버지와 같은 존재처럼 다가온다. 존은 “미국은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마크의 인정욕을 자극한다. 그리고 마크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폭스캐처팀에 기쁘게 합류한다.

존 듀폰과 마크 슐츠 <출처: 다음 영화>

존 듀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듀폰 가는 국가에 큰 공헌을 한 미국 최고의 명문가이다. 1802년 위대한 화학가 라 부아지에의 제자였던 엘테일 듀폰은 프랑스 시민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다. 엘테일은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화학회사를 설립하는데, 듀폰사는 미 남북전쟁에서 화약을 공급하는 사업을 담당하여 북군의 승리에 크게 공헌한다. 이를 기반으로 듀폰사는 미국 최고의 화학회사로 자리를 잡는다. 존 듀폰의 집 곳곳에 걸려있는 선조들의 초상화는 이에 대한 자부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듀폰 가의  4대손 존 듀폰은 한 가지 심각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승마를 사랑하는 존의 어머니 진 듀폰은 레슬링을 야만스러운 운동이라 폄하하며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존은 그러한 어머니에게 인정받고자 무던히 애를 쓰지만 쉽지 않다. 존의 대부분의 행동 동기는 이곳에서 나온다.

약 120분 영화에서 어머니 진은 약 3분 남짓 등장하지만 영화 내내 집에 함께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집안 곳곳의 그림과 집사의 언급 등을 통해). 이는 한 개인에게 초자아로서 평생동안 각인되는 부모의 모습을 상징한다.

존은 국가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또한 강하다. 그는 팀 폭스캐처를 통해 미국 최고의 레슬링 코치이자 후원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실 존의 레슬링 실력은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조차 매수해서 이길정도로 형편없다. 거액을 미 레슬링 협회에 기부하고, 훈련장면을 짜집기 해 자신의 자전적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존은 미국 레슬링의 상징이자 전설적인 인물이 되고 싶다.

 

고뇌하는 존 듀폰 <출처: 다음 영화>

존은 마크와 아버지와 아들같은 관계를 형성하지만 이내 마크를 버린다. 처음에 존은 마크의 생활을 책임지고 인정욕을 채워주는 아버지같은 존재로서 마크를 대한다. 그러나 마크가 더 이상 존의 야망을 충족시키지 못하자 (사실은 존 때문이지만), 존은 마크를 구타하고 모욕한다. 그리고 존은 마크의 대체자로 마크의 친형 데이빗을 폭스캐처로 영입한다.

존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정신적 학대를 마크에게 되풀이하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 존에게서 버림받은 마크는 계속해서 고립되고, 반항하고, 스스로를 학대하지만 존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인간은 이렇듯 자신이 받은 학대를 자신도 모르게 다른이에게 되풀이한다. 영화의 중후반부는 엄마에게 인정받고자 몸부림치는 존의 모습과 존에게 인정받기 위해 발작하는 마크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결국 그 두 사람이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했던 서울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획득은, 약속이나 한듯이 실패한다.

버려진 (혹은 버림받았다 생각하는), 그리고 실패한 마크와 존의 열등감과 광기는 형 데이빗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마크는 형 데이빗을 폭스캐처로 불러오는 매개체가 되었고 (실제로는 데이빗이 먼저 폭스캐처에 들어간다), 존은 데이빗을 살해한다. 살해동기는 복잡하지만, 어찌되었던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거짓없이 사랑을 베풀었던 데이빗은 살해되었다. 광기의 피해자는 결국엔 이러한 사람들이다.

마크를 위로하는 형 데이빗 <출처: 다음 영화>

한 가지 토론의 여지가 있는 점은 과연 존 듀폰이 국가와 부모로부터 합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존의 막대한 재산은 듀폰가의 국가 공헌에 따른 결과물이다. 남북전쟁에서의 공헌이 그들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어머니가 존을 인정하지 않음은 고집스러운 어머니 때문인지, 아니면 인정받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무능했던 존 때문이었는지 확실히 하기 어렵다. 혹은 어머니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 존을 무능한 흉내쟁이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경우 인간의 큰 비극이나 사건들은 의외로 작은 곳에서 출발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는 인간의 컴플렉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폭스캐처는 존 듀폰 살인사건을 통해 인간의 컴플렉스가 모여 발생하는 비극의 한 모습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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